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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왜? 를 놓지 말자. 더보기
종로 수업 자료 사러 부랴부랴 문 닫기 전에 교보 들러서 정신 없이 책이랑 이것 저것 사서 나오니 하늘은 진한 남색이고 바람은 서늘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문득 내가 참 좋아하던 종로인데, 서점인데, 조계사인데.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이 곳에 학원 다니러, 강의하러, 강의 자료 사러, 강의 가는 길에 잠시 환승하러 들렀을 뿐이라는 것이 상기됐다. 그나마 가끔 따로 시간을 내어 들렀던 마카롱집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즐겨 찾던 베트남 쌀국수 집은 주인이 바뀌어 맛이 형편없어졌다. 문득 나 참 낭만 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에 미쳐서 그냥 일만 하고 취미 생활만 하느라 쓸 시간이 없었다. 매일 잠이 부족해 눈 밑이 검고 시간이 나면 쪽잠을 자기 바빴다. .. 더보기
영화 [밀양]-용서에 대하여 그 때가 아마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짧은 머리를 하고 즐겨 입던 원피스를 입고 귀에는 무려 테디베어 귀걸이를 즐겨 했던 2007년의 봄이었다. 학교 수업은 혼자 듣는 경우가 잦았다. 부전공이 철학이었고, 흔히 영어를 선택하는 필수 실용 외국어는 동기 중 혼자 일본어였다. 그래서 대학 친구들은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거나 전공 시간에나 만났다. 수업이 혼자 끝나서 혼자 교문을 나오는 경우가 잦았다. 그 날은 햇살이 강하고 따뜻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수업이 드물게 일찍 끝난 날이었다.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웠다. 딱히 다른 일정도 없었다. 무작정 강남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서 고개를 들어 보니 cgv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잠시 그 빨간 간판을 응시하다가 이내 .. 더보기
몸의 중심 나는 오늘 귀가 너무 아프다. 왼쪽 귀 안쪽과 그 주변 머리, 관자놀이가 이렇다 할 간격 없이 꽈광 꽈광 아프다. 마치 누군가가 쇠파이프를 내 귀에 꽂아 두고 심심할 때마다 쇠망치로 내려 치는 것만 같다. 통증이 찾아올 때는 가던 걸음도 멈추고 오만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게 걱정되는 마음 조차 들어설 겨를이 없다. 뚜렛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파르르 떨며 눈을 찡긋거린다. 그렇게 찰나의 큰 통증이 지나면 이 아픔이 너무 짜증이 나 눈물이 난다. 턱에는 호두모양의 주름이 잡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믿은 적이 있다. 신적 존재와 에너지의 실존을 믿었을 때, 그 믿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오지 못했을 때. 온전히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여 울적한 지금, 나는 너무 아.. 더보기
사과를 받지 않을 권리 ​​살다 보면 절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이라 때론 실수를 하기도, 당하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 상식 이하의 일을 당하기도 하고 선의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많은 경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어그러짐이 있을 때 누군가는 사과의 말을 건네거나 누군가는 그 사과를 받아줌으로써 다시 그 어그러짐을 되돌려 놓고는 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은 이 경우에 자주 인용된다. 일종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성장통과 같은 어그러짐. 이는 잘못을 한 사람의 철저한 반성과 피해를 입은 사람의 너른 이해심으로 -물론 많은 경우 쌍방이겠지만- 충분히 회복 가능한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어떠한 극단적인 일을 겪고 누군가가 더 이상 상종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