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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삶앎

몸의 중심

나는 오늘 귀가 너무 아프다. 왼쪽 귀 안쪽과 그 주변 머리, 관자놀이가 이렇다 할 간격 없이 꽈광 꽈광 아프다. 마치 누군가가 쇠파이프를 내 귀에 꽂아 두고 심심할 때마다 쇠망치로 내려 치는 것만 같다. 통증이 찾아올 때는 가던 걸음도 멈추고 오만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게 걱정되는 마음 조차 들어설 겨를이 없다. 뚜렛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파르르 떨며 눈을 찡긋거린다. 그렇게 찰나의 큰 통증이 지나면 이 아픔이 너무 짜증이 나 눈물이 난다. 턱에는 호두모양의 주름이 잡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믿은 적이 있다. 신적 존재와 에너지의 실존을 믿었을 때, 그 믿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오지 못했을 때. 온전히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여 울적한 지금, 나는 너무 아프다. 몸은 통증으로 아프고, 정신을 잃은 정신은 육체에 휘둘려 아프다.

다크서클이 분장 같이 진한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염증 때문인 것 같은데 계속 아프면 또 내원하라 한다. 대상포진이 될 수도 있으니 일단 오늘은 쉬라고 한다. 대상포진은 예방할 방도도 없다고 한다. 귀야 자주 아파왔으니 큰 병은 아닐 것 같다. 약 먹고 쉬면 몸 속 염증이 가라앉으며 통증도 가라앉을 테다. 약국에서 약을 받자 마자 빈속에 한 봉지를 털어 넣는다. 급성 패혈 증세가 왔을 때에도 난 씩씩거리며 약을 삼켰다. 이까짓 육체적 통증이 날 괴롭히는 그 느낌이 너무 분하고 억울하기 때문이다.

불교철학 세미나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번역에만 급급해 내용을 놓치는 대학원생들을 답답하다는 듯 슥 둘러보고는 툭, 물음을 던졌다.

"우리 몸의 중심이 어디일까?"

활자만 보면 너무나도 간단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을 내기엔 그럴싸한 근거를 댈 자신이 없어 모두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한 선생님이 "심장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다른 선생님은 이어 "뇌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한다. 교수님은 다른 이들도 말해보라며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난 뭐라고 대답했더랬지? 입 아니면 뇌라고 했던 것 같다. 교수님 심중에 들어 앉은 답과 일치하는 대답이 나오질 않아서, 혹은 그럴싸한 근거를 대지 못해서였는지 교수님은 답답한 듯 숨을 내쉬고 혀를 날름거려 입술을 살짝 적시시곤 말했다.

"아픈 곳. 우리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야."

수강생들의 혀 안쪽 목구멍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교수님의 억양 때문에 "아픈 곳"이라는 단어에 '아' 자에 악센트가 들어갔는데, 그 소리가 정말 제대로 "아픈 곳"을 일컫는 것 같아 강렬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픈 곳, 현재 나의 중심은 아마 왼쪽 귀를 비롯한 왼쪽 얼굴과 머리일 것이다. 엄마도 일전에 그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 몸에 뭐가 달려 있는지 모르는데, 어느 날 "아, 내 발이 여기에 있구나." 하면 발이 아픈 거라고. 아파야 그게 거기에서 어떻게 있었는지 알게 된다고.

비단 육체 뿐만이 아니다. 난 요즘 아 내 마음이 있구나. 라는 것도 실감하고 있다. 안하무인 건방지게 잘난 맛에 살아와서 난 딱히 미지근, 혹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 이곳이 자주 확인되는 것을 보니 이곳도 꽤 아픈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내 몸의 중심인 귀와 목의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푸욱 잠을 자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날보다 고된 하루였는데 좋은 핑계가 생겼다.